조해일 선생을 언제 처음 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많은 제자들 이 그렇듯이 '소설창작' 강의시간이었으리라. 그 과목이 2학년 수업이니, 내가 만 스무살 무렵. 하지만 나는 시인 지망생이었고, 그래서 특별히 그 강의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학부 시절 내내 조해일 선생은 내게 그저 여러 명의 교수'님'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선생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게 된 건 대학원 박사과정 무렵부터다. 그것도 논문 지도교수와 제자 관계가 아니라, 종종 모여서 함께 술 마시는 악동(선생은 가까운 제자들을 '악동들'이라 부르셨다)이었다. 선생이 지도하던 '들녘'이라는 소설창작학회가 있었는데, 나는 들녘 멤버가 아님에도 자주 그 모임에 끼어들어 함께 술을 마셨다. 선생은 술을 한 잔도 못하시던 분이다. 간에서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가 선천적으로 부족해서, 생맥주 한 잔에도 얼굴이 빨개지셨다. 주량의 최대치인 생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선생은, 제자들과 새벽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조해일 선생을 떠올리면 단연 '자유'가 첫 단어다. 나는 지금껏 선생만큼 개인의 자유를 극진히 추구하고 지키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는 개인을 억압하는 일체를 증오했다. 그 증오가 그를 타인과 연대하게 했다.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문장에 관해서는 딱히 선생으로부터 배운게 없다. 내가 배운 것은 더 크고 중요한 것, 오직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만이 타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교수라는 권위, 명망 있는 작가라는 권위를 그는 진즉에 내다 버린 사람이다. 나이가 많건 어리건, 돈이 많건 적건, 많이 배웠건 못배웠건, 모든 사람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도덕교과서에 나오지만 누구도 실천하지 않는 진리를, 내게 삶으로 보여준 분이 조해일 선생이다.
그리고 그의 자유에 대한 존중과 연대가, 선생을 늘 젊게 했다. 청바지 입고 청년들과 자주 어울린다고 환갑 노인이 젊어지는게 아니다. 선생은 정신이 유연하고 만사에 호기심이 많았다. 모르는 것은 몇번이고 제자들에게 물어가며 배웠다. 그렇게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배우고 SNS를 배우고, 세상과 연대했다.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입원하기 직전까지, 선생의 SNS에는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모금과 희망버스를 알리는 소식이 자주 올라왔다. 그가 무슨 특별한 이즘이나 주의에 경도되어 그런 것이 아니다. 선생에게는 그런 연대가 모든 개인의 자유를 지키고자하는 자연스런 성정의 발로였다.
제자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해일 선생은 모든 제자들을 아끼는 은혜로운 선생이 아니었다. 그는 권위적인 사람, 옹졸한 사람, 위선적인 사람을 멀리했고 제자라고해서 다르지 않았다. 조해일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온전한 개인 대 개인으로 동등하게 맞설줄 알아야했다.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해인가 스승의 날이었다. 대학원에서 논문지도를 받는 제자들이 감사를 표하는 의례적인 자리를 마련했다. 허나 선생은 그날 우리 악동들과 술자리를 가졌고, 끝내 대학원생 모임 자리에 가지 않았다. 그 제자 모임의 좌장역을 맡았던 한 선배는, 그후 술에 취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네가 선생님 제자가 아니야. 우리가 진짜 선생님의 제자들이야." 나는 속으로만 이렇게 말했다. "너가 그 따위니까 선생님이 제자로 안 받아주시는 거야. 쯔쯔."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정신이 굳는다. 옹졸해지고 고집스러워지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덧 세월이 이렇게나 흘러, 선생을 처음 뵈었던 내 만 스무살 무렵의 선생님 연배에 내 나이가 다가가고 있다. 그렇담 지금의 나는 그때의 조선생님처럼 유연하고 자유로운가? 택도 없다. 어찌하리. 부던히 노력하는 수밖에. 선생이 그러하셨듯이.
공교롭게도 나 역시 대학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학생들을 대할 때마다 생각한다. 조해일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20여년 전에 죽심방 악동들과 모여 술을 마시면 술값 계산은 늘 선생님 몫이었다. 얻어먹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염치가 없어진 제자들이 어쩌다 계산이라도 할라치면 선생은 나무라며 특유의 함경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다. "예서 내보다 연봉 높은 사람 있으면 그 친구가 계산하라우. 그 전까지는 술값은 내가 내갔서." 선생이라 제자들에게 무조건 베푸는 게 아니라,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를 위해 가진 것을 내놓는 일. 그게 당연한 일이라는 가르침이었다.
대학 강단에 선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조해일 선생 같은 사표가 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택도 없다. 그저 학생들과 술자리할 기회가 있으면, 선생이 그러셨던 것처럼 입은 닫고 귀를 열고, 술자리가 파하면 술값 계산이나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