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최웅식

 2008-06-12 12:41:03 / Hit:2884  

헝그리 복서

헝그리 복서
                          최웅식

사십대가 넘어가자 사내의 뾰족한 몸이 무뎌진다
책임 감량 5kg을 내세운 88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운영하는 권투장에서 심하게 휘어진 연예인들이 속삭인다
“당신의 몸무게를 책임지죠.”
“헝그리 복서가 되고 싶어요.”
한 세상은 다른 세상으로 열려 있는 법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반대말이 나타나듯
자본의 힘이 비껴가는 비밀정원으로 헝그리 복서들이 몰려든다
종이 울리면 링 위에서 야수가 되는 헝그리 복서
천장으로 솟구치며 자신의 근육을 부활시키는 헝그리 복서
원, 투를 치다가 신대륙을 향해 훅을 날리는 헝그리 복서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를 줄넘기로 채우고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전설을 떠올려보는 사내
헝그리 복서들의 손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면
피와 땀과 눈물로 채워진 마지막 합숙소가 보인다
원장이 돌아오기 전까지 헝그리 복서들은
동전이 짤랑거리는 소리 없이 뛰어다니고
코치가 와서 정규 과정을 지도하기 전에 모두 해산한다
헝그리 복서들의 착하기만 한 몸짓을 관람하고 싶으면
충분히 굶주려 있으면 되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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